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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염라자홍][강림자홍][19] 집착

DAPnDAWN 2018. 1. 5. 12:06

강림자홍 염라자홍





01.

"어딨습니까, 김자홍?"

강림은 염라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눈빛에서 대적할 수 없는 권위가 절실히도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 그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 물러설 수 없었다. 도움을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 귀인 하나가 강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싶나?"

염라가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매서운 눈꼬리가 휘었고,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강림을 그것을 차마 '미소'라 정의할 수 없었다. 명백한 가소로움의 표시. 강림과 염라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주위를 에워쌌다. 먼저 등을 보인 것은 염라였다.

"지난번에 김수홍을 찾아냈듯이, 잘 찾아보거라."

물론 그마저도 하찮은 저승차사 따위는 상대할 바가 되지 않는다는 우열감에서 새어 나온 것이겠지만.
강림은 염라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모래바람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눈을 감지 않았다. 이내 염라가 완전히 사라지자, 눈꺼풀에 힘을 풀었다.
아른거리는 얼굴 하나가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어딨는겁니까, 김자홍 씨.



02.

강림이 기억하는 자홍의 마지막 모습은 태산대왕의 거처 앞에서였다. 겉모습 답지 않게 가차 없이 혀를 뽑으려 했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자홍이 유일하게 꺼려 하는 대왕이었으나, 본디 아이를 좋아하던 심성은 태산대왕마저 순수한 아이로 바꿔 놓는가 보다. 물론, 아주 잠시지만.

"김자홍 씨, 여기서 뭐 하십니까?"

망자를 데리고 우여곡절을 거쳐 거짓지옥 앞에 도착한 강림의 앞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자홍이 있었다. 지옥에 체류한 최초의 인간. 귀인. 참 해맑기도 그지없는 모습에 강림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왕님하고 사탕 먹고 있었는데..아, 재판?"

이크, 저 얼른 가볼게요. 자홍이 공손하게 태산대왕에 인사를 올린 뒤 강림의 옆을 지나쳐 걸어갔다. 여전히 반가운 감정을 만면에 머금고 저승삼차사들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덕춘과 해원맥은 정겨운 말을 건넸고, 강림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멀어져가는 귀인의 뒷모습을 보니 떨려오는 심장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강림은 그것을 단순한 착각이라 치부하기로 했다. 죽은 심장부터 죽어있는 손 끝까지 피가 도는 기분이 생경했지만, 그는 그렇게 치부하기로 했다.

이미 죄인이 되었던 자는 다시 거짓지옥에 올 수 없다는게 아쉽군.

태산대왕의 매서운 눈빛이 강림에게 꽂혀왔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의 덕춘과 해원맥을 지나쳐 강림은 재판장에 섰다. 태산의 여린 얼굴에 흥미로움과 호기심이 스쳐 지나갔다.

"죄인이 되었던 자가 아니라, 죽은 자를 벌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강림이 망자를 재판장에 세우고 옆으로 물러나며 덧붙였다.



03.

"오늘 차사 강림을 만났다."

염라의 목소리가 굵게 떨어졌다.
바닥에 끌리는 도포자락에서 굴러 떨어지는 모래알 소리가 작은 숨소리를 뚫고 허공을 가로질렀다. 맨발에 닿아오는 차가운 돌바닥의 기운이 사뭇 저릿했지만 염라는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너를 찾더구나."

염라의 목소리에 허억, 작은 숨소리가 마지막 들이쉼을 끝으로 멎었다. 어느덧 방의 가장 구석까지 걸어온 염라도 걸음을 멈췄다. 억겁의 시간 동안 살아온 염라에겐 한없이 작고 연약해 보이는 물체 하나가 염라의 그림자에 가려진 채 옅게 떨려오고 있었다. 염라는 친히 무릎을 굽혔다. 겁에 질린 갈색 눈동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거짓말하진 않는게 좋을게야."

김자홍은 염라의 그림자 아래에서 떨고 있었다.


 .


"저..흐..는 잘 몰르…헉,"

자홍이 입을 틀어막았다. 손으로 입을 막아도 입술을 짓이겨도 혀를 깨물어도 새어나오는 신음성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염라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침대보를 깨무는 자홍의 갈색 뒤통수를 쓸어내렸다.

"강림이 왜 너를 찾는지 네가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염라가 부드럽게 다그쳤다. 목소리와 다르게 염라의 허리는 바삐도 움직이고 있었다. 억, 자홍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물론 강림이 왜 자신을 그렇게 찾아 헤매는지 모른다는 자홍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은 염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겁에 질린 자홍이 보고 싶을 뿐이었다. 멈춘 심장의 껍질을 깨주는 그 모습을.

"차라리 환생을 택하지 그랬느냐,"
"…사..헉, 살려ㅈ.."
 
쯧, 염라는 혀를 찼다. 품 안에서 부들거리는 연약한 체구는 그가 명백한 인간임을 말하고 있었지만, 지옥에 남은 이상 염라에게 귀속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부들거리는 자홍의 손가락이 기이하게 꺾이기 시작했다.

"..저런, 내가 말하고 있는데."

이내 자홍의 몸이 축, 늘어졌다. 염라는 그럼에도 자홍에게서 몸을 떼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자홍은 인간이었지만 염라는 그렇지 않았다. 염라가 계속해서 허리를 쳐올렸다. 보기 좋게 그을려있는 몸에 이빨을 박아 넣고, 따뜻하게 닿아오는 감촉을 만끽했다.

귀인 김자홍은 나 염라에게 귀속되어있다, 그 사실이 염라를 멈출 수 없게 하고 있었다.



04.

그 커다란 지옥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둘러보았지만 흔적도 찾을 수 없었던 김자홍에, 강림은 자홍이 염라의 궁전에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가자, 더 이상 한시도 기다릴 수 없었던 강림이 순간이동을 시도하러는 순간, 해원맥이 다급하게 강림의 팔을 붙잡았다. 다짜고짜 염라의 궁전에 쳐들어가려는 강림을 간신히 제지한 해원맥이 머리를 쓸었다.

"미쳤어? 당신 저승차사야, 상대는 염라대왕이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난 지금 가야겠어."

 강림이 해원맥의 팔을 쳐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홍이 염라의 궁전에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갔다. 가소롭다는 미소와 그 말투. 저를 바라보던 눈빛까지, 염라의 눈은 깊은 탐욕과 만족을 담고 있었다. 강림은 두고볼 수 없었다. 설령 그가 착각이라 치부하고 있는 감정이라고 해도, 가슴이 시키는 일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망자 잘 책임져."

이 무슨 데자뷰야..순식간에 강림이 사라진 수풀 사이를 해원맥이 허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 아래에 자홍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어두컴컴한 조명 때문에 눈을 많이 깜박거릴 필요도 없이 그는 쉽게 앞을 볼 수 있었다. 탐욕스러운 시선이 그를 훑어보고 있었다. 아직도 아래가 꽉 들어찬 느낌이 생생했고, 그게 느낌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자홍이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이제야 제대로된 목소리를 들어보는군."

염라가 만족스럽게 자홍을 내려다보며 허리를 쳐올렸다.
무방비 상태에서 쾌감과 고통 사이의 기로에 놓여진 자홍의 입에서 차마 막지 못한 신음성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염라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한 곳만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염라가 이내 자홍의 뒷머리칼을 부여잡고 입을 맞춰왔다. 살덩이가 엮어지고 입안을 휘저었다. 염라와 자홍의 입술 사이로 은색 실타래가 길게 이어졌다.

"흐으, 그, 그만."

자홍이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로 애써 염라를 밀어냈다.
염라는 꿈쩍도 하지 않고 더 거세게 허리를 쳐올리고 있었지만, 자홍도 물러나지 않았다. 간신히 손을 들어 올린 자홍이 염라의 가슴팍을 내리쳤다. 호오, 거센 반항에 염라의 입꼬리가 꿈틀, 올라갔다.

"나는 지옥의 대왕이라,"

염라가 자홍의 귓볼을 물었다.

"반항하는 인간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한 번 깊게 텀을 두고 뺐던 것을 뿌리 끝까지 깊게 쳐올렸다. 자홍도 이번엔 비음이 새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05.

똑똑, 웅장한 검은 문은 작게 두드려도 곧 큰소리를 만들어냈다. 강림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안 쪽에서는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꿋꿋하게 기다리고 했고, 검은색 돌문만 바라보았다. 5분 쯤 지났을까, 경고라도 하는 듯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강림이가 온 모양이구나."

염라가 허릿짓을 멈추고 말했다. 베개를 끌어안고 버티던 자홍의 입이 벌어졌다. 안돼, 안돼. 자홍이 다급하게 염라를 밀어냈다. 이미 죽은 인간의 비루한 몸짓에도 염라의 얼굴에는 비릿한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계십니까?"

강림은 조심스럽게 궁전 안으로 발을 디뎠다.
평소 같았으면 신하들로 가득 차있었을 궁전에 무거운 적막 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는 넓디넓은 정원을 지나쳐 안채로 지나쳤다. 마치 가야 할 길을 알려주듯 강림이 발을 옮길 때마다 미로처럼 복잡하던 집안의 문이 한 개씩 열리고 있었다.

"안돼, 흡, 이거, 흐으."

자홍이 마지막 힘을 다해 염라를 밀쳐냈다.
반항하는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도망가려는 자홍의 발목을 붙잡은 염라가 손을 높게 쳐들었다가 가차 없이 휘둘렀다. 퍽, 강한 파열음과 함께 자홍이 돌바닥 위에 나뒹굴었다.

"김자홍 씨?"

강림은 주위를 샅샅이 살폈다. 웬만한 지옥들만큼 거대한 공간에 그도 당장 자홍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겠다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 때. 끼익. 마치 누군가 대놓고 알려주기라도 하 듯 누가보아도 의심스러운 지하실 계단 문이 그새 열려있었다. 함정일 것이다. 차사 강림은 무언가 잘못됬다는 것울 알았지만 그는 주저없이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우리 할 건 마저 해야지?"

차가운 돌바닥 위로 내려온 염라가 자홍의 발목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끼기긱, 돌바닥 위로 자홍이 손톱을 긁는 소리가 선명히 울려퍼졌다. 염라는 그 사이로 들을 수 있었다. 발걸음 소리.

"왔나보구나."

염라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강림의 손이 문고리를 잡았다.


06.

수위고자라 급하게 마무으리…ㅋㅋㅋㅋㅋㅋ
염라자홍 우쭈쭈도 존나 좋지만 집착도 좋은거 같다. 물론 나같은 똥손이 아니라 금손님이 써주실 때ㅋㅋㅋ난 이번 생엔 글렀어..

오늘의 결론: 수위는 쉽게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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