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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늘그렇듯이, 라준모가 화난 이유는 별로 엄청난 것이 아니었다. 백승찬이 신입피디로 입사하고 1년뒤에 사귀기 시작한때부터 늘 반복되던 일이었다. 어제 촬영지에서 백승찬은 늘그렇듯 욕구불만에 시달렸고, 라준모를 화장실로 밀어넣었다. 몇몇 눈치빠른 스탭들(신디도 포함됬다)이 백승찬의 등짝을 내려치며 화장실 문을 걷어차고 나오는 것을 연민, 혹은 한심이 그득 담긴 눈으로 쳐다보았다. 뭐왜어쩌라고. 어느덧 짬밥이 생긴 백승찬은 자신보다 기수가 낮은 이들에게 주먹을 들어보였으나 라준모가 그의 머리통을 한번더 내려치며 상황은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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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준모도 이번엔 참을 수 없었다. 망할 백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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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지에 갈때마다 반복되는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 (백승찬은 아주 조금, 아니 좀더 많이 그 상황을 즐겼다) 결국 라준모가 폭발한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잠자리복불복을 폭력적으로 진행하고, 스탭들이 잠을 청하러 방에 들어가자마자 라준모는 백승찬의 뒷목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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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은 설랬다. 아까 마무리하지 못한게 있었으니..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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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준모는 백승찬을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가자마자 정강이를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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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이 정강이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넘어졌다. 라준모는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주저앉은 백승찬의 눈높이에 맞추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라준모는 백승찬에게 버드키스를 날리거나, 손을 잡아 일으키고 사과하는 것 대신에 박치기를 날렸다. 이번엔 백승찬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라준모는 몸을 일으키고 백승찬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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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사는 좀 가려. 봐주는데도 한계가 있어.
라준모는 그렇게 내뱉고 널부려져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백승찬을 지나쳐 걸어갔다. 세걸음 갔을까, 라준모가 뒤돌아 백승찬의 얼굴옆에 발을 꽂았다. 우리 시간을 좀 갖자고. 라준모는 그렇게 말하고 스탭들이 자고있는 숙소로 먼저 향했다. 백승찬은 좀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 둘은 공인이었고, 백승찬의 벌이는 짓들은 위험함을 넘어서 인생을 끝장낼 수 있었으며, 그 주변에는 스탭들이 있었고, 연예인들이 있었고, 일반인들이 있었고,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고, 그에게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며 그에게는 그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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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큰 실수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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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은 그날 잠을 설쳤다. 옆에 누워있는 라준모의 동그란 갈색 머리통만 바라봤다. 평소라면 그의 몸통위에 다리를 걸치고 그의 머리통에 코를 파묻고 잤을테지만, 다가갈수 없었다. 본디 백승찬은 수줍게 태어난 사람이었다. 라준모와 사귀기 시작함으로써 그게 조금 중화되긴 했지만, 수줍고 소심했다. 그는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어떻게 말을 걸고, 사과를 하고, 다시 사랑해줘야하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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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준모는 자신의 뒷통수에 꽂히는 시선을 느끼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너도 한번 그렇게 고통스러워보라지. 라준모는 오랜만에 발뻗고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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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젠장. 젠장. 이러려던 게 아닌데. 라준모는 자신의 눈앞에 수놓아진 향초들을 절망스런 표정으로 바라봤다. 과자 뺏긴 어린애처럼 입을 벌리고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고있는 라준모를 백승찬은 수줍어하며 바라봤다. 제 선물입니다, 선배님. 이젠 그만 용서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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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이 라준모에게 이벤트를 했다. 평범한 촛불 이벤트였다. 회사내에서 였다.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아직 그 어떤 피디들도 퇴근하지 못했을 월요일 오후 2시 예능국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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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준모는 진심으로 백승찬이 죽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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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의 이벤트는 그뒤로도 계속됬다. 촬영장에서 내미는 꽃다발, 예능국 창문에 비친 라준모♥(는 다행히도 준모가 보지 못하는 사이 예진에 인해 진압됐다), 책상위에 쌓여진 종이학들, 피디들과 함께 찍은 MARRY YOU(를 패러디한 SORRY YOU) 등등등.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이벤트들에 라준모는 이젠 백승찬을 죽이기보단 그냥 자기가 죽고 싶었다. 라준모가 지나가면 다른 피디들과 직원들은 이젠 그만 백승찬을 용서해달라며 아우성댔고, 백승찬이 지나가면 다른 피디들과 직원들은 파이팅을 외쳐댔다. 지랄, 남의 프로그램 폐지될때는 그 자리 어떻게 꽤차고 들어가야돼나 고민했던 인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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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준모는 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이벤트를 끝내기 위해서라도 백승찬의 사과를 받아주기로 했다. 애초에 진심으로 화난던건 아니였다. 스릴돋고, 재밌고....자신도 조금 느꼈으니까.....좀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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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은 저번이 마지막 이벤트라고 생각했다. 저번에 받아주지 않으면 관둘생각이었다. 라준모를 좋아하는 걸 관둔다는게 아니다. 그건 무슨 미친개소리람? 그냥 이벤트를 관둔다는 뜻이다. 그다음에는 그냥 덥치고, 납치해서, 결혼할 생각이었다. 라준모가 만약 이 계획을 들었다면 정말 백승찬을 죽여버렸을것이다. 탁예진은 크리스마스때마다 교도소에 방문하는 것을 원치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백승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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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미안하다고 말해. 한마디만 하라고.
그게 될까요?
라준모한테는 그게 직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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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은 탁예진의 말을 믿어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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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왜. 저 할말이 있습니다! 뭐. 그게 말입니다... 뭔데.
백승찬의 심장이 백배속으로 뛰었다. 내장이 코로 튀어나올 것 같은 진기한 느낌을 경험하고 있었다. 백승찬은 숨을 몰아쉬고,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라준모를 응시했다. 젠장 이건 잘못된 선택이었어. 라준모를 보자 이번에는 손발가락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라준모는 이번에 또다른 이벤트를 한다면 받아줄 생각이었다. 물론, 별로 탐탁친 않았을 것이다. 잠시뒤, 라준모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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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죄송합니다! 제가 공과사를 구분 못해서...라준모는 만족스런 미소를 입가에 띄운채 백승찬의 고개를 조금 아래로 끌어당겼다. 따뜻하고 도톰한 라준모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닿자 백승탄의 라준모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라준모는 백승찬의 목에 손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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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을 몰래 관찰중이던 예진,흥순,태호는 동시에 헛구역질하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망할 라준모, 바로 받아주기있어? 몇주동안 화나있더니 바로 키스하네. 어휴 저 거퀴들... 셋은 바닥을 기어 거퀴 지옥을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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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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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에게는 이벤트병이 생겼다. 습관은 버리지 못한다고, 몇주동안 쫓아다니면서 이벤트만 벌였더니 결국 그게 습관이 되버렸다. 백승찬은 지금 촬영장, 심지어 KBS 본관앞 계단에 장밋잎으로 하트모양을 새기고 있었다. 창문밖으로 그 모습을 목격한 피디들이 재빠르게 내려와 입바람으로 장밋잎들을 다 날려버렸기에 다행이지, 그들은 하마터면 라준모의 쩌는 뒤끝을 다시 맛봐야만 했다. 백승찬은 그들을 말리지도 못하고 뾰로통하게 장밋잎을 새로 놔두었다. (물론 놔두는 족족 지들이 바람의 신이라도 되는마냥 바람을 불어대는 피디들에 의해 모두 계단 한쪽 구석으로 밀려났다.) 화장실에서 돌아오던 라준모는 엉덩이를 긁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한쪽에 그득히 쌓여있는 장밋잎들을 보고선 어우,겨울에 왠 장미야? 아무튼 지구온난화라니까. 하고 눈새멘트를 날리는 걸 잊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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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촬영장은 KBS 본관앞 계단이었다. 그 장면을 지켜본 수많은 시민들이 있었고, 그 시민들이 그 장면을 찍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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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 피디의 신디를 향한 끊임없는 구애..신디 흔들]
-저만하면 받아주지. 저정도면 잘생겼는데.
+잘생긴게 다에요? 완전 영화배우급. ㅇㅈ?
-난 라준모가 더 호감이던데.
-우리 신디 건들지마 OOO아
-관심없다. KBS 잘나가는 피디들한테 우리가 왜 관심을 주나. 우리가 신경써야할 더 큰문제가 있다.
+진지병....
-신디..?글쎄...내가보기엔 아닌거 같은데..?ㅎㅎ
+ㅎㅎㅎㅎㅎ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ㅎㅎㅎ
+KBS 피디로써 공인합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게 맞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응원합니다!
+뭐지? 나만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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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준모가 핸드폰을 부숴트릴 듯이 손에 말아쥐었다. 아마도 휴대폰의 내부에 전선 하나쯤은 조각났을것이라고 흥순이 거대한 팔뚝을 움츠리며 예진에게 속삭였다. (움츠릴때 손에 쥐어져있던 연필이 두동강 난것을 보고 예진은 한심하다는 듯 쯧-혀를 찼다.) 라준모는 자신을 향해 해맑게 달려오는 백승찬을 보고서 핸드폰을 책상위에 내려놓았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백승찬을 제외한 모든 피디들이 뭐야? 누구 넘어졌어?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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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라준모의 미간에는 주름 세개가 생겼다.
근데 감이 좀 떨어진듯...오컬트하고 유니크한 개드립이 생각이 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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